사도행전 13장 13-40절, 1999년 7월 3일 강연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 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 안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약 사백오십 년간)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사도행전 13:13-40)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사도행전 13:13)
이 내용은 매우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평범하기만한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요한은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 요한입니다. 그는 바울과 바나바의 수종자였는데, 그들과 동행하다가 어머니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바울과 바나바는 큰 고난을 겪게 되었고, 마가 요한은 고의적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고난을 피해 떠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은 후 바울과 바나바는 이전에 전도했던 지역들을 돌아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했으나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난에 동참하지 못했던 자와는 동행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 일로 바울과 바나바는 크게 다투고 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중요한 사역을 맡은 두 사람이 서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세상을 살다 보면 육신적인 면이 강해질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라면 그런 것들은 헌신짝처럼 버렸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3장에는 이 일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사도행전 15장에는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 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사도행전 15:36-41)
한 사람이 조금 편한 곳으로 떠난 뒤 남은 두 사람이 겪은 고난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 고난으로 바울은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고후 1:8 참조) 심지어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후 4:12)는 말도 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삶 전부를 하나님 앞에 바친, 그 일을 위해 죽음마저도 각오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이런 면을 볼 때 바울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으로 인간의 정과는 거리를 둔 차가운 삶을 살았던 사람 같습니다만, 사실은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일행들에게서 점잖게 빠져나갔지만 그때 바울의 마음은 매우 섭섭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3장 13절 이후를 잘 살펴보면 거기서부터는 사울이 이제는 로마인의 이름인 바울로서 움직이게 됩니다. 이제 바울은 이방인의 이름을 쓰며 전도하는 일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이 아니라 ‘바울과 바나바’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 이름의 순서가 바뀌어서 바울의 이름이 바나바보다 앞서게 됩니다.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사도행전 13:14)
비시디아 안디옥은 13장 1절에 나오는 안디옥과는 다른 곳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유대인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이 모이던 회당에는 유대인 아닌 이방인으로서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면 만사를 제쳐두고 어떤 일이 있어도 회당에서 모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종교인들이 주일 날에만 예배당에 가는 것과는 다릅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밤까지로, 요일도 다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들도 안식일 날에 회당에서 모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이르자 동족들이 모이는 회당에 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먼 지방이어서 그랬는지, 아직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경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평소대로 회당에 가서 앉았습니다. 대개 어떤 종교 집회에 처음 참석하면 어색해서 그저 서 있거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보느라고 정신이 없기 마련인데 바울과 바나바는 익숙하게 회당에 가서 앉았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사도행전 13:15)
누군가가 회당에서 구약 성경에 기록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었습니다. 예수께서도 갈릴리에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와 비슷한 행동을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눅 4:16-20 참조) ‘율법과 선지자의 글’이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과 이사야나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글을 말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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