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롬 1:11) 에서 말씀하셨던 ‘신령한 은사’가 성도 섬기는 일이다, 복음이다, 혹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해서 저희들끼리 논란이 있었습니다. 두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지요?
▶ 복음은 이미 전해진 것이기는 합니다.“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몬 1:6) 한 내용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롬 1:17) 한 말씀과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롬 1:8) 는 말씀을 보면, 그 믿음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믿었다’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삶 속에 그 믿음이 어떻게 유지되어 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Q 바울은 결국 로마 사람들에게 ‘복음 이상의 것’을 가르쳐주려는 마음으로 로마에 가려고 한 것이네요?
▶ ‘복음 이상의 것’은 어떤 특별한 은사라기보다는 구원받은 사람의 삶이 ‘믿었다’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믿음을 대신해 서신을 미리 보내어 로마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설 수 있도록 해 주고, 그후 로마에 직접 가서 서신의 내용을 확정지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서신을 통해서라도 교제를 주고받는 중에 말씀을 깨달아 가는 힘이 생깁니다. 복음이 전해진 후에 이러한 믿음의 교제가 전해진 것이 바로 ‘복음 이상의 것’입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고후 1:21) 라는 말씀이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3-14) 등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고린도 교회나 에베소 교회나 공통된 부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Q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복음 이상의 것이 ‘신령한 은사’와 관련이 되잖아요. ‘신령한 은사’가 말씀이나, 성도 섬기는 일, 교제 등을 나타내는 것이죠?
▶ 말씀 안에는 성도들의 삶 자체가 놓여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안 이후에 살아간 모습을 봅시다.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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