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아 / 소설가
1997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그대 앞에 가는 길’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1999년 장편소설 ‘그 바다는 어디로 갔을까’로 삼성문학상을 수상했다.주요작으로 ‘도둑’, ‘버리지 않는 남자’, ‘아무도 증명할 수 없는 나’ 등이 있다.
사람들은 한 때 외숙의 투쟁을 김일성이나 현직 대통령의 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외숙에게 그건 정말 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그리하여 나는 외숙이 그 모든 혼돈의 세상에서 등을 돌리고 초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외숙은 방법을 바꾸었을 뿐, 그의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야말로 진정한 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 우리가 이 섬에 많은 빚을 진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정말이지 사람들은 너무 많이 이 섬을 유린했어요. 그래서 말이지만 이제는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이상 이 섬을 이용해서 투기를 하고 떼돈을 벌어 볼 생각을 해서는 안돼요. 나는 언젠가 이 섬의 젊은이들이, 아니 우리의 젊은이들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자동차가 아닌 말을 타고 저 넓은 초원을 바람처럼 달리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다 후련해집니다.
바울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연을 배우고 인생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그런 세상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런 점에서 나 또한 당신의 사업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당신의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난 당신이 이제야말로 진정한 혁명을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숙은 빙긋이 웃었다. 하지만 외숙이 그런 웃음을 지을 때 나는 마음이 이상해진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삶을 사랑하고 챙기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그 무엇인가를 하나씩 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 버리고 나서 자기 몸 하나까지 이 초원에 묻어두고 홀가분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물론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초원에 진토로 돌아가고야 말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외숙처럼 자기 죽음을 바라보면서 숨 가쁘게 자기 앞의 일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 아이들이 정치 걱정을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해요.
이 나라의 정치에 진저리를 치고 있는 어머니가 한숨을 쉬는 사람처럼 말했다.
정치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 건 아니오. 다른 고민거리가 생겨나지 않겠소.
바울 아저씨는 태평하게 말했다. 아저씨는 처음부터 사람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에 대해서도 기대하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부정을 해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할 때 결백할 수 있었을 거라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오면서 부패할 수 있는 여건이 자기 주위에 조성되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몰아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왜 그토록 부패하지 않을 수 없는지에 관해서 내게는 책임이 없었는가 묻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생각에 정치인들은 단지 정치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나라 사람들 모두가 정치꾼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에 씁쓸한 미소를 금할 길 없는 것이다. 지나치도록 외식에 길들여져 버린 사람들, 그리하여 진정한 세상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안타까울 뿐이다. 아저씨는 나라가 곤두박질치면서 모라토리움*의 지경까지 굴러 떨어졌지만 누구에게도 욕하지 않았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네 형편이란 생전 돈 구경을 못해 본 촌놈이 엽전 닷 냥을 차게 되자 세상의 돈을 다 가진 것처럼 으스대는 격이라고 했다. 그 꼴이 하도 괘씸해서 돈줄을 쥐고 앉은 양반들이 한 방 먹인 거나 진배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양이의 큰 기침 한 번에 모골이 송연해진 쥐처럼 우리는 숨도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기에 모라토리움을 선고한 옐친 앞에서 캉드쉬는 입도 벙끗 하지 못했다. 중국이 핵실험을 계속해도 잘난 미국인들은 몇 마디 지껄이다가 그만 둘 뿐이고, 능구렁이 같은 중국인들은 어느 집 개가 짖어대나 한다. 자기들은 원폭에 중성자탄은 물론 리모콘 하나로 안방에서 유유자작 커피를 마시면서 수만 마일 밖에 숨어 있는 적의 암살을 거뜬히 수행하는 무인정찰기까지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지면서 내가 좀 가지면 안 된다니, 도대체 당신은 가져도 되는데 내가 가지면 안 되는 이유가 뭐란 말이오? 중국인들은 도무지 자기 둔한 머리로는 그토록 어려운 문제를 풀어 내릴 길이 없다는 수작이다. 그래서 고양이는 쥐를 가지고 놀지만 굶주린 사자나 곰 앞에서는 발톱을 오므리고 우아한 목소리와 천진스러운 동작으로 아양을 떨면서 천천히 우회전을 한다.
그는 가끔 세상을 거머쥐고 앉은 몇 개의 큰손이란 말을 한다. 정치는 쇠퇴하고 세상은 점점 돈줄을 쥔 몇 사람의 손아귀로 흘러 들어가고야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금융 산업과 맞물리며 일어서는 새로운 로마에 관해서, 그 거대한 나라가 일어나게 된 경위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그것은 BC 오백 년 전 바벨론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의 꿈을 통하여 예언되었던 세상의 미래가 비로소 펼쳐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의 세계 전쟁을 치르면서 유태인들이 미국으로 떠나자 사분오열로 나누어졌던 유럽은 몰락했다. 유럽을 움직이던 돈줄이 미국으로 흘러갔다는 말이다. 세계 어느 국민들보다 자본적인 기질이 농후한 중국을 사회주의 그늘 속에 얌전히 잠재우고, 사회주의 경향이 가장 농후한 일본을 너그러운 자본의 체재로 풀어놓은 것은, 오직 신흥로마제국을 일으키려는 신의 의도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했다. 이제 예언대로 모든 정치와 행정이 로마로 흐르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세상의 큰 흐름은 이미 짜여진 틀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그들 내부에선 사실 전쟁이니 평화니 하는 따위의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당한 기간으로 비와 바람과 햇빛을 주는 신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전쟁과 평화를 양분하면서 흩어진 양을 우리로 몰아가듯, 천천히 세상을 한 곳으로 몰아가고 있을 뿐이다. 고양이에게 쥐란 배고픔을 해소하는 양식일 뿐이며, 배부른 고양이는 잠시 너그럽게 쥐를 가지고 놀뿐만 아니라 쥐를 가지고 노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러다가 느긋하게 배부른 쥐를 보는 순간 거의 지병처럼 입맛을 다시면서 발톱을 세우는 고양이처럼, 돈줄을 바짝 끌어당기자 논 금 사이로 숨어버린 논물처럼 두 눈 멀뚱하게 뜬 채 빈 금고 앞에 속수무책으로 서 있었던 사람들의 심정을 아저씨는 눈으로 보는 것처럼 말한다. 계산된 정책에 놀아 날 수밖에 없는 빈약한 우리의 정책을 개탄해 보지만, 아무도 몇 백 년, 몇 천 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대를 이어 계획하고 수행해 오고 있는, 그들의 은밀하면서도 치밀한 계산을 감당하지 못하며, 더욱 무서운 것은 피해 나갈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겐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잠시 금을 긋고 국가를 인정하는 것은 목적을 위한 고도의 수단일 뿐이다. 그들에겐 오직 세계는 하나며 하나의 세계에서 리더가 되는 일만이 목적이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정치는 너무 깊이 썩어버렸어요. 대통령들만 해도 보세요. 한결같이 그들에게 주어진 시한을 잊어버리죠. 오 년을 기약하고 들어가서 오십 년을 살고 나오는 식이죠.
그런 일이라면 우리 또한 마찬가지요. 자기에게 주어진 육십 년을 육천 년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게 우리가 아닌가 말이오.
하지만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구토가 납니다. 국회는 마치 조나단 스위프트*의 말처럼 봇짐장수 소매치기 강도 깡패의 집단처럼 보인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돕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이 나라가 암 말기환자 같다는 생각이 다 들어요.
내 생각에도 조나단 스위프트가 우리의 정치를 보았다면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에서 정치를 연구하는 교수들처럼 각자의 뇌를 잘라서 적당하게 혼합하는 형태의 수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외칠 게 분명하다. 언제쯤이면 국민의 박수를 받으면서 청와대를 걸어 나오는 대통령을 만나볼 수 있을지.... 우리에게 그런 기대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지, 악취미적인 기질이 다분한 어머니도 가끔씩 거대한 용광로 속에 세상 사람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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