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25 강연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1-12)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인류 역사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환전하는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19절) 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뜻을 알지 못했지만, 성경은 이에 대하여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1절) 고 설명합니다.
성전은 건물이지만 한 육체와도 비교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한 여인의 모습으로 설명될 때가 있습니다. 이방의 역사도 다니엘이 본 신상의 모습으로, 역시 한 육체의 모습으로 설명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으며 그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과 열두 지파가 겪어가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를 어떻게 조성하셨으며 그것을 어떻게 운영하시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전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성전을 통해서 먼저 역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분명히 성전은 지어졌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행해졌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육체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역사는 비슷한 점이 참 많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이 자라난다고 했듯이 (엡 4:15-16 참조) 아담에서부터 시작된 인간 역사도 아벨로 연결되고, 노아로 연결되고, 아브라함으로, 이삭으로, 야곱으로 계속 연결됩니다. 한 세포가 어머니 몸속에서 세포 분열을 일으키며 한 육체를 이루어가듯이, 시와 같은 창세기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점점 넓어지는 것입니다.
성전에 대해서도 똑같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몸속에 긴 척추가 있고 그 척추를 중심으로 해서 주요 장기들이 있듯이, 성경 전체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어떤 흐름이 있습니다. 성전이 솔로몬 왕의 손을 통해 지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어떤 일을 행하고, 어떻게 왕국을 일으켰으며, 어떻게 멸망했고, 어떻게 다시 살아났다가 어떻게 하나님을 배반했는지 그 긴 역사의 장정 속에는, 유대 역사 가운데 태어나신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성전의 모습을 통해 성경 전체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전의 모습을 빼면 한 인격체로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껍데기를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만 비추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했을 때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창 3:11) 고 물으셨습니다. 아담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벗었다고 하시며 그를 꿰뚫어 보시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 옷을 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짐승의 피가 흘려진 것의 의미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열납하셨습니다. (창 4:4 참조) 그렇게 인간 역사의 시작과 함께 죽어가는 짐승들의 핏자국이 성경 속에 숨어 있습니다. 또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짐승과 새로 제사를 드렸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그 향기를 흠향하셨습니다. (창 8:20-21 참조)
이후 많은 사람들이 바벨탑을 지으면서 흩어짐을 면하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흩어버리시고, 멀리 있던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가나안 땅으로 불러들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나이 들어 낳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 이삭은 장성해서 나이 많아 두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 둘째 아들인 야곱, 바로 이스라엘의 조상은 복을 받기 위해서 자기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을 들고 몸에 염소의 털을 붙이고는 아버지 이삭에게 가서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복을 받은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았고, 그 열두 아들이 함께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사백 년을 지낸 뒤에 그 자손들이 애굽을 나올 때도 유월절 양들이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광야로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고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성경 첫 구절부터 인간의 역사가 차츰차츰 열리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까지 왔을 때 한 인격체의 모습이 우리에게 보이듯이, 제사의 역사도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성막과 성전에 대해 단순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막과 성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에 있는 두 그룹들 사이에서 우리 인간과 만난다고 하셨습니다. 성소를 통해 휘장을 열고 지성소에 들어갔을 때, 두 그룹이 마주보고 있는 그 사이에서,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인간과 만나신다는 위엄 있는 말씀을 모세에게 하신 것입니다.
성막과 성전 - 그리스도의 두 가지 모습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를 유리하는 동안 성막을 어깨에 메고 진행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는 오랜 기간 동안 성막에 대한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사무엘상에 성막이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왔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다윗 왕이 등장한 이후에 성막의 위치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은 (행 13:22 참조) 끝까지 성막을 보호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곳으로 끌어올리려고 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사무엘하에도 나타나고, 역대상 마지막 부분에도 나타납니다. 또 그가 쓴 시편에는 “주의 장막”이나 “주의 전”, “주의 성소”에 대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땅에 있는 성소를 말하는 내용도 있지만 참 것을 그리는 내용도 있습니다. 또 북방의 시온 산에 있는 하나님의 성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시 48:2 참조)
다윗 왕은 평생 성전 지을 준비를 했습니다. 성전을 짓고 그 속에 법궤를 두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성전을 짓기 위해 모았던 금의 양만 해도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목자로서 양을 지키기 위해 짐승들과 싸우며 그 짐승들의 입에서 양들을 꺼내기도 했던 다윗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고난받고 핍박받으신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지만 끝까지 성막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성막의 속은 금으로 발려 있고 항상 불이 켜 있어서 휘황찬란한 모습이었지만, 겉은 건조한 사막의 바람으로부터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보호하는 해달의 가죽으로 덮여 있어서 보잘것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성막은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듯한 모습으로 이스라엘 역사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는 그렇게 끝나고 이제는 지혜의 왕, 판결의 왕으로 이스라엘 앞에 나타나는 솔로몬의 손을 통해 성전이 지어집니다. 우리는 먼저 고난 받으시고 후에 왕 중 왕이며 심판자로서 영광중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상에는 솔로몬이 지을 성전에 대해 다윗이 솔로몬에게 명령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다윗이 전의 낭실과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식양을 그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 또 성신의 가르치신 모든 식양 곧 여호와의 전의 뜰과 사면의 모든 방과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의 식양을 주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과 여호와의 전에 섬기는 모든 일과 섬기는 데 쓰는 모든 그릇의 식양을 설명하고 또 모든 섬기는 데 쓰는 금기명을 만들 금의 중량과 모든 섬기는 데 쓰는 은기명을 만들 은의 중량을 정하고 또 금등대들과 그 등잔 곧 각 등대와 그 등잔을 만들 금의 중량과 은등대와 그 등잔을 만들 은의 중량을 각기 적당하게 하고 또 진설병의 각 상을 만들 금의 중량을 정하고 은상을 만들 은도 그렇게 하고 고기 갈고리와 대접과 종자를 만들 정금과 금잔 곧 각 잔을 만들 금의 중량과 또 은잔 곧 각 잔을 만들 은의 중량을 정하고 또 향단에 쓸 정금과 또 타시는 처소 된 그룹들의 식양대로 만들 금의 중량을 정하여 주니 이 그룹들은 날개를 펴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덮는 것이더라 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 (역대상 28:9-19)
성전은 성막을 기초로 지어졌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모세에게 보여 주신 그대로 광야에서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한 왕국을 이룬 뒤 성전을 지으려 할 때, 하나님의 손이 임해서 다윗에게 성전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죽으로 덮여 있던 성막이 이제는 돌로 지어집니다. 성막을 둘러싸고 있던 하얀 세마포 담장은 이제 돌과 나무로 이루어진 제사장의 뜰이라고 하는 성전의 바깥뜰이 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흘러가고 솔로몬이 성전을 짓습니다.
열왕기상 6장에는 성전의 크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이 육십 규빗이고 광이 이십 규빗이고 고가 삼십 규빗이라고 합니다. 즉 길이가 27미터, 너비가 9미터, 높이가 13.5미터 정도 되는데, 성막은 초라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성전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방법대로 웅대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이나 그 속에 있는 기물들은 성막과 거의 동일합니다. 성전 안에는 등대가 열 개가 들어가고 상도 열 개가 들어가는 등 성막과는 그 숫자에서 차이가 나기는 합니다만, 기본적인 디자인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 주신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6장 7절을 보겠습니다.
이 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뜨는 곳에서 치석하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공사판에 돌을 가져와서 막 다듬어 쌓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돌을 뜨는 곳에서 돌을 전부 다듬은 후에 가지고 와서 건축했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는 곳에서는 두들기는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열왕기상에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모습을 보고 성전은 이미 지어졌다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어졌다’가 아니고 “지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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