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7 강연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위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열왕기상 5:5)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2:21)
예수님의 두 모습, 다윗과 솔로몬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 이스라엘에 다윗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었고, 솔로몬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앞서 성경 속에서 이 두 사람이 함께 겪어간 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두 인물이 겪어가는 사건과 그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우리 개개인이 겪어가야 하는 어떤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고난받으신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그 고난은 무엇 때문에 필요했습니까? 히브리서에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비록 이방 여인으로 인해 이방신을 섬기다가 실패한 적이 있지만, 영광 중에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는 인물입니다. 다윗이 있음으로 해서 솔로몬의 생애가 가능했고, 솔로몬은 다윗이 준비했던 성전 짓는 일을 완수함으로써 다윗이 살았던 70년 삶을 빛내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을 단순하게 아버지와 아들의 입장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어떠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왜 많은 피를 흘렸고 왜 전쟁을 치렀고 왜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까?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죄인들을 위해 질고를 짊어지고 세상을 사셨던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죄,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인류 전체에게 닥친 운명에 따라, 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우리 인간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셔서 우리의 모든 질고를 지고 살아가셨고,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다윗은 바로 예수님의 그러한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먼저는 내가 어떠한 존재로 이 세상을 살아왔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접하고서 우리에게 주어진 복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변화를 받았습니다. 로마서 8장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분의 영이 우리 속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11절 참조 그리고 우리 죽을 몸도 언젠가는 예수께서 우리 개개인 속에 심어 주신 영으로 말미암아 살려 주신다는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공중에서 영접하게 될 분, 먼저 새로운 육체로 부활하셔서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고 언젠가 우리를 불러 올리실 그분을 만나게 될 날이 옵니다. 그분이 유대 민족들이 열망하던 그 모습으로 오실 때, 바로 메시야가 세상에 재림하실 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모습, 고난받으신 예수님과 영광 중에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두 모습을 분리하여 어느 예수님이 더 귀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 몸을 흐르는 동맥피는 심장에서 나와 모세혈관까지 가서 산소 교환을 합니다. 그리고 혈관을 통해서 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심장으로 돌아오는 피를 정맥피라고 합니다. 각 지체로 가는 피와 돌아오는 피, 그 둘 중 어느 것이 더 귀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 육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의 법칙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기동하고 호흡하고 음식을 먹고 몸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생명의 법칙이 우리 육체 속에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는 이런 두 가지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개개인의 삶 속에서, 또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다윗과 솔로몬의 관계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좀 더 큰 의미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군인이었고,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었고,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실제 외적으로도 많은 일을 겪었는데, 아들 압살롬이 자신을 배반하기도 했고, 심복들이 자신을 배반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의 속에서는 많은 생각들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다윗은 일평생을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삶은 고난받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성막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 시대에는 성전이 없었고, 언약궤만 휘장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막의 안쪽은 금으로 싸여 있었습니다. 조각목으로 안에 벽을 만들고 그것을 금으로 다 쌌습니다. 안의 기명들도 대부분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성막의 겉은 가죽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성막은 광야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 민족이 옮기기 쉽고 설치하기 쉬운 방법으로, 또 모래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재료들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법궤를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의미에서 왜 그런 것들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 출현했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열두 지파나 되는 민족이 어떻게 보면 초라해 보이는, 가죽으로 덮인 성막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는데 왜 그렇게 해야 했습니까? 또 왜 짐승이 잡혀야 했고, 왜 그곳에서 제사장이 그 짐승의 피로 제사를 지내야 했는지 거기서 그 일을 행했던 레위 족속과 제사장들, 또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열두 지파가 그 의미를 알았겠습니까?
이것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언젠가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실 메시야를 증거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아담의 불순종 때문에, 또 불순종한 아담의 피를 이어 세상에 태어난 우리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피를 많이 흘린 군인이고 안팎으로 고난을 받았던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삶은 어떻고 우리 인류의 삶은 어떠한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삶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고,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을 통해서 나타나는 영광스러운 모습은,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이 역사 속 어느 한 기점에 두 번째로 오실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죄인으로 세상에 태어났지만 성경 말씀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고 변화를 받아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님과 함께 영화롭게 될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과 솔로몬이 살아간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 많은 왕들이 있었지만 단일 왕국을 이루었던 때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밖에 없습니다. 사울 왕은 야곱을 통해 예언된 왕이 아니었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라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누셨습니다. 열두 지파가 통일된 한 나라로 살아간 것은 다윗과 솔로몬 두 시대뿐입니다.
다윗이 준비하고 솔로몬이 지은 성전
우리는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내용들을 염두에 두고 솔로몬이 짓고자 했던 성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다윗이 아니라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것에는 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성전을 짓는 일에 십오만 명이 넘는 이방인이 동원된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전을 지을 때 이스라엘 땅의 나무가 아닌 이방 국가 레바논의 나무를 가져와서 지은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 지금 교회 시대를 살고 있는 이방인인 우리에게 이것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도 자세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쉽게 생각하고 넘어갈 내용이 아닙니다.
먼저 요한복음 2장을 보겠습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한복음 2:13-22)
이스라엘 역사에서 성전을 살펴볼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말씀이 바로 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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