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 필리핀
이 글은 2013년 11월 16일 강원도 강릉에서 있었던 교제 자리에서 정경화 형제가 하신 이야기를 글로 옮긴 것입니다.
저는 1978년 10월부터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그 당시 이야기들은 제 추억 속에만 담고 가게 될 줄 알았지, 이렇게 여러 형제자매들 앞에서 꺼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합니다.
저는 1970년에 구원받고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며,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교제 가운데 있으면서 복음 전하는 일에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교제 안에서 할 일을 찾겠다는 꿈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그러다 1978년에 대구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4년 6개월의 공군 단기 기술 하사관으로 복무했는데, 제대를 1년 남겨둔 때에는 이제 한 해만 지나면 제대하고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결혼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6개월째 되던 때에 하사에서 중사로 진급이 되면서 뜻하지 않게 장기하사관으로 복무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동해안 최북단인 강원도 거진의 부대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내 인생이 내 생각과는 다르게 어긋난다는 생각에 무척 힘들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거진으로 가면서 교제와 멀어져 전방으로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굉장히 좋지 않았고, 군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3, 4개월 동안은 아내와 함께 아침마다 베갯잇을 적시며 ‘아, 우리가 이렇게만 살다 갈 것인가. 이게 아니었는데.’ 하며 한탄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대장님이 급히 저를 부르셨습니다. 무슨 야단맞을 일이 있나 해서 찾아가 보았더니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와 있었습니다. 그 오지에 있는 부대로 올 전화가 없는데 무슨 일인지 의아해 하며 전화를 받아보았더니 한 형제께서 전화를 건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시급히 수리해야 하는 전자제품이 있는데 다른 사람을 부를 수가 없어 저에게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와 줄 수 있는지를 물으셨습니다. 수화기를 든 채로 옆 소파에 앉아 계신 대대장님께 여쭈었더니 대대장님은 무슨 다급한 일로 짐작하시고는 다녀오라고 바로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게 작은 일이지만 전화를 받고서 버스를 타고 한계령을 넘어 서울로 가는데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릅니다. 수양회 때마다 제가 전기 일을 했던 것을 한 형제님이 기억하시고 저에게 연락하신 것이었습니다. 교제에서 떨어져 외롭게 사는 것만 같았는데, 별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니지만 그저 그곳의 형제자매들 얼굴을 보고 온 것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 일을 통해 제 마음에 쌓여 있던 무언가가 해소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힘을 얻고는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가 보니 교사회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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