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9:23-24)
천국과 하나님 나라
찬송가를 부르다 보면 조금 혼동되는 표현들이 종종 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찬송가 495장)
이 한 곡의 찬송가 1절, 2절에 ‘천국’과 ‘하늘나라’가 각각 동시에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과 ‘하늘나라’가 같은 것이라고 배워왔고,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또 ‘천당’이라는 집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 14:2) 는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 앞에 가면 있을 곳이 있다는 내용으로 ‘집 당(堂)’자를 붙여 ‘천당’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천당’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신약 성경 속에 나타난 ‘천국’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읽지 않으면 같은 나라로 생각해 버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엄연히 ‘하나님 나라’와 ‘천국’이 구별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영어 성경에는 어떻게 나와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에 하신 말씀 속에도 같은 개역 성경의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나님 나라’는 ‘the kingdom of God’이고 ‘천국’은 ‘the kingdom of heaven’으로 다르게 쓰였습니다. 이 내용을 가지고 ‘천국’과 ‘하나님 나라’를 달리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마태복음 19:23-24)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나란히 쓰였지만 분명하게 다른 내용입니다. 또 마태복음 5, 6, 7장의 산상보훈을 읽어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3) 라고 시작됩니다. 그런가 하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에서 “그의 나라”는 ‘the kingdom of God’인 ‘하나님 나라’로 되어 있습니다.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하늘나라는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또 예수께서 산상에서 말씀하실 때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9-10)
영어로 ‘thy kingdom come’이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고 우리말로 참 어렵게 번역되었지만 그 말씀은 ‘당신의 나라(國), 천국이 이 땅에 임하게 하옵시며’ 라는 말입니다. 이 기도문은 ‘땅 위에 이 천국의 역사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천국복음을 설명하시는 도중에 이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2천 년 역사 속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연구하고, 전하고,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데 바빴지만, 성경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세월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성경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왔지만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하지 못한 책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께서 가르쳐 주셨던 ‘하나님 나라’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천국’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옳게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로 섞어 겪는 혼란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과는 다른 유대인의 소망
성경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면 유대인들, 즉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는 한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역사의 마지막 부분을 이어서 통치하시는 영원한 나라가 있을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즉 이 땅에 그리스도라는 통치자가 오셔서 역사를 이을 것인데, 그는 다윗의 위(位)에 앉아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런 소망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세례 요한은 처음 설교부터 대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 3:2) 라고 말했습니다. 이 유대인들이 바라는 소망, ‘천국’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해 놓은 것이 마태복음입니다. 마태복음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가 단지 몇 번밖에 안 나오는 데 비해, ‘천국’이라는 단어는 아주 많이 나옵니다. 마태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할 때에 ‘천국’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 땅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유대인들은 유대 땅을 통치하실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바라는 강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강렬한 소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흘만에 살아나신 후 사십 일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는‘천국’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 1:1-3)
40일 동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친히 사심을 보이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워 가시기 직전에 제자들은 궁금해 하고 있던 사실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사도행전 1:6)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유대인들이 평소에 늘 가지고 있던 소망이었습니다. 제자들이 평소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가지고 있던 소망과 의문은 구약의 모든 말씀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언제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라는 예수님이 올리워가신 그 ‘하늘나라’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현실적인 나라, 그들의 땅에 이루어질 ‘천국’을 말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3년 동안 수고한 결과를 받으려 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 놓치지 않고 물어보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들었어도 그들은 그것을 ‘천국’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 나라’, 곧 ‘천국’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틀렸다기보다는, 그들은 구약에 예언된 내용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 것입니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사도행전 1:7)
예수님은 실제적인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해서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알 바 아니요” 라는 말씀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과 답은 참 묘한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 친히 사심을 보이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는데, 그들의 관심은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확실히 회복하셔서 왕권을 가지게 되면 그 옆에 앉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예수가 확실히 그리스도이시니 그분께서 왕권을 쟁취하실 때에 그분의 왼편이나 오른편에 앉아 권세를 누리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와서 ‘내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제자들은 화가 치밀었습니다. ‘뭐 건방지게. 그것은 내 자리인데.’ 하고 질투를 하게 된 거지요. (마 20:20-24 참조)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의 소망 사이에서 죽음을 맛보시고 살아나셔서, 가르치신 내용은 이스라엘의 왕권을 회복해서 그 위(位)에 앉기에 앞서 해야 될 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생각을 앞질러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의 뜻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시기까지 제자들이 이 땅 위에 남아서 해야 할 일이 겹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순서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바로 이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셔야 된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서 내 증인이 될 것이라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면서 너희가 성령을 받으라고 부탁을 해주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40일 동안 가르치신 일이나, 제자들이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을 받아서 예수의 증인으로서 전할 그 일이 ‘하나님 나라’와 직결된다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후, 교회의 일원이 되어 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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