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 2006년 12월 27일 오후, 저녁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창세기 26:3)
교회의 그림자인 이삭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리고 그 아들 이삭,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 잘 압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은, 전체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삭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기 때문에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약 성경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마 22:32, 눅 20:37, 막 12:26 참조), 구약 성경에는 이삭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습니다. 구약 성경 아모스에 이삭의 이름이 몇 번 거론될 뿐입니다. (암 7:9, 16 참조) 왜 그럴까요?
창세기를 보면, 이삭은 말도 별로 없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조용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버지 아브라함을 따라 모리아 산으로 올라갈 때 제물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던 모습이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부인이 될 리브가를 만나는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신부로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죽은 후 홀로 남아 있는 시절의 이삭의 인생에 대해서는 성경에 별로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삭은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기 쉬운 인물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를 읽다 보면 이삭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1절 보겠습니다.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21-22절)
‘계집종’은 애굽 여인 하갈을 말하고 ‘자유하는 여자’는 아브라함의 본처인 사라입니다.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23절)
창세기에는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16:2) 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자의 말을 듣고 태어난 아들이, 계집종에게서 육체를 따라 난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우리에게는 율법과 같은 존재입니다.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3절)
이 약속은 이스마엘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 22:17) 는 이 약속은, 때가 되어 이루어졌을 때 태어난 아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그림자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다시 보겠습니다.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 하고 (24-25절)
율법의 종노릇을 하는 이스라엘의 모습과 닮았다는 뜻입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6절)
이삭은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의 모습대로, 그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즉 새 언약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몸에 속한 교회를 뜻하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7-28절)
‘너희는’, 교회를 말합니다.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경험하도록 철저하게 단련을 받는 그 사람에게서 태어난 약속의 아들이 이삭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를 경영하시는 모습을 목격하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실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새롭게 태어난 집합체를 교회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그 교회에게,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1:11-13) 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난,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나타내 주신 인생들의 집합체를 교회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원인 우리는 이삭의 삶을 통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보호 받아야 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우리는 이삭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지나쳐 버리는데, 이번에는 이삭이 하나님께 어떠한 명령을 받았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5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175세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7절 참조)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에서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마치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듯이, 먼저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이 소개되고 그 후에 이삭의 아들들의 이름이 소개됩니다. 기록된 그 순서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삭이 두 아들을 낳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먼저는 에서이고 다음이 야곱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후에 나타나는 교회의 역사라는 그 순서가 이 창세기 속에서 계속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무엇입니까.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마 19:8)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예정하실 때 아들 하나님과 한 몸을 이루는, 절대 떨어질 수 없는 부부 관계를 미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교회’는 그 모습을 따라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창세기 25장에서 그렇게 이스마엘과 이삭의 자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후에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뒤에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의 장년의 모습이 잠깐 나옵니다. 그리고 27장에서는 이삭이 나이가 많아서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때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창세기 26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 이 성경을 읽으실 때 갈라디아서의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이삭이 겪는 일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26:1-5)
그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흉년이 들어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던 모습은 인류에게 복을 주시려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임하셨던 것과 비슷합니다. 믿음의 조상으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철저하게 맛보도록 되어 있던 아브라함은 그것을 경험했지만 약속의 아들로 태어난 이삭에게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삭에게는 오히려 애굽에 내려가지 말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다녀왔는데 만약 이삭도 애굽을 다녀오게 된다면, 성경의 교리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평생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될 인간으로 남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단번에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다. 단 한 번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인류 전체의 죄를 사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교리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진 우리 영혼의 위치에 대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2:6)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흉년이 든 땅의 모습으로 보이고 있지만, 하늘에 속한 영혼의 위치를 가진 이들이 세상으로 돌이키는 것을 성경은 미리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분 나시는 대로 가라, 가지 마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아주 자세히 봐야 합니다.
레위기 22장 3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하나님이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은 인류를 향한 그 자비하심과 사람 사랑하심을 표현하시기 위해서 간절한 목소리로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모세의 손을 빌어 애굽 땅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차라리 애굽에서 죽는 것이 나을 뻔했다. 애굽에 있을 때는 먹을 것이라도 많았다.’ (민 11:5, 14:2 참조) 하며 한탄했습니다. 자꾸 애굽으로 돌이키려는 마음이 이스라엘 민족의 목소리 속에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론 세상을 향한 사탄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성경을 통해 영혼이 거듭났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부딪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자꾸 육신의 즐거움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호세아서 11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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