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 자매 김정옥 인터뷰
지난 8월 대구에서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리고 있을 무렵, 신문 한 켠을 장식했던 기사가 있었다. 예천에서 대구 방향으로 이동하던 북한 응원단과 선수들이 고속도로 톨게이트 부근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악수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 네 장을 발견하고는 “장군님의 사진이 비를 맞게 이런 곳에 걸어두다니”, “장군님 사진이 이렇게 낮게 걸려 있다니!” 하고 눈물을 훔치며 현수막을 모두 떼어냈다. 이어 이들은 김정일의 사진 부분만 평평하게 펴고 현수막의 나머지 부분을 접은 뒤 영정을 모시듯 버스로 가지고 되돌아갔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를 본 대다수의 남쪽 사람들은 어이없고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종종 TV에서 신파극의 변사 같은 목소리로 하나같이 수령 동지를 찬양하는 북한 인민들을 보면서, 일종의 종교적 열광이나 집단 최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이것이 나의 뇌리를 점유하고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그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다른 소소한 것들은 떠오르지 않을 정도이다. 사실 내게 있어 북녘 땅은 금지된 땅만큼이나 너무도 먼 곳이고, 같은 민족인 북녘 동포들도 외국 사람들보다 더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 내게 탈북자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어떤 소중한 인연처럼 다가온 것은 지난 9월이었다. 중국을 방문했을 때, 누군가로부터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자 중에 구원받은 자매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그녀의 이름과 연락처를 수첩에 적어두었던 것이다.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예감과 함께 우리의 만남은 가을날의 서늘한 설레임처럼 서서히 다가왔다.
그녀를 만난 곳은 마른 잎이 하나 둘 거리를 떠도는 양재역 근처였다. 빈 가지에 허전한 마음이 걸리고 뺨을 때리는 바람이 매운 늦가을,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은 가슴 깊이 품은 남모르는 희망처럼 유난히 파랬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릎을 가린 치마와 검은 구두, 깔끔하게 화장을 한 얼굴, 염색을 한 듯한 갈색 머리는 어디를 봐도 북한 사람이라는 표시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정갈한 치아가 보이는 입을 열었을 때 특이한 억양의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근의 한 식당에서 구수한 청국장으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나는 또박또박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하는 한 강직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북한 땅에서 태어나 주로 함경북도 온성군에 살았던 그녀가 북한 감시원의 눈을 피해 두만강을 건넌 때는 1999년 봄이었다. 조선족 자치주인 중국 연변지역과 북한 땅을 경계 짓고 있는 두만강은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건너오는 통로였는데, 두만강 위의 살얼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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