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고! 건강하게! 되찾은 새로운 삶!정경화 | 필리핀
이 글을 쓰신 정경화 형제님은 ‘매매’ 씹기를 통해 침으로 몸을 회복한 후, 탈북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애쓰다 필리핀으로 가셔서 현재 선교활동을 하고 계신다. 필리핀 내의 여러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도록 힘썼고, 수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거듭났다. 자기 몸을 회복시켜 주신 주님께 감사를 돌리며 지금도 정경화 형제님은 필리핀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계신다.
오늘날 이토록 활기차고 건강한, 그야말로 ‘젊은 나’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어느 분의 아낌없는 지도와 지속적인 독려, 그리고 시기적절한 충고 덕분이었다. 그분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가슴 깊이 두고 감사함을 잊지 못할 은인이 되셨다. 창조주께서 젊음의 기적을 인생들의 입 안에 두셨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작고 평범한 진리가 기적이 되었다. 이것은 나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인생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창조주의 축복의 선물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내가 겪었던 지난날과 같이 하루하루를 병의 굴레에서 힘겨워 하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래서 나와 같이 그들도 젊은 날의 건강을 되찾아 활기찬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하는 간절함으로 이 글을 드린다.
힘들었던 9년의 투병 생활
2002년 7월 셋째 주 어느 날 새벽 5시 30분경이었다. 터질 것처럼 ‘쿵! 쿵! 쾅! 쾅! 쾅! 쾅!’ 갑작스레 요동치는 심장의 동통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이 순간부터 나의 삶은 온통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잠만 들었다 하면 깊은 잠에 빠져 아무리 흔들어도 잘 깨어나지 못하고 새벽잠이 많은 내가, 쿵쾅거리며 요동치는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고 곁에 누운 아내가 깨어나지 않게 조심스레, 그리고 간신히 자리에서 빠져나와 진정을 시켰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에도 그 다음날 새벽에도 같은 증세가 되풀이되었다. ‘이렇게 되풀이되다가 어느 순간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소리 없이 갈 수도 있겠구나!’ 전부터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이른 것 같아서 착잡한 마음을 가누기가 쉽지 않았다. 곁에 누운 아내에게도 내색하지 못하고 이제 조용히 삶을 정리해야 할 상황인가?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정리 작업에 착수했다. 회사, 부모, 가족, 친척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미처 다 하지 못한 일들이 마음에 걸려 할 수 있는 한 서둘러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머뭇거리기만 했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새삼 진하게 다가왔다.
당뇨로 투병해 온 지 어언 9년! 나 자신이 당뇨인 줄도 모르고 지낸 세월이 4년, 알고 나서부터 5년의 세월을 보냈다. 누군가로부터 들은 ‘당뇨 10년에 합병증 없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떠올리며, ‘이것이 그것이구나.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과중한 업무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어 힘이 든 것이려니 하며 지내던 중, 95년 1월 5일 오후, 왼쪽 얼굴이 굳어지는 마비증세가 나타나면서 입 안에 담은 물이나 음식이 흘러내려 양치나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이튿날 병원에 가보니 안면 신경마비라고 했다. 당시에는 당황하여 마비가 풀리도록 하는 데 급급하여 당뇨로 인한 것인 줄을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 회사 일을 쉬면서 지냈던 6주간의 외로운 시간들이 아직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그로부터 2년 후인 97년, IMF가 시작된 8월 마지막 주간으로 기억된다. 모회사가 어려워지자 계열사의 어려움과 충격 역시 매우 커졌다. 가중되는 업무 스트레스가 과도한 부담으로 다가왔던지 몸은 극도로 지쳐 있었다. 더 이상 원만한 업무 수행이 어려워지자 병원을 찾아 현재의 상태를 호소했다. 정밀 진단 결과 선고된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당뇨병이었다. 더 이상 일을 하는 것은 무리기에 집에서 쉬면서 치료와 조절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아득한 기분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당뇨가 어떤 병인지 잘 몰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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